통장 잔고가 삼천 원이다.
'이거 진짜 죽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평일 오전 열 시, 여느 때처럼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손에 쥔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재미있는 자극제를 찾으려 애쓴다.
입안이 심심해져 책상 위에 놓인 담뱃갑을 열어보지만, 담배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할 수 없이 집 앞 편의점으로 향한다.
편의점에 들어서자마자 아르바이트생의 성의 없는 인사말이 들려오지만, 무시한 채 레종 한 갑을 달라고 한다.
아르바이트생이 내민 가격 안내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카드를 건네주었지만, 잠시 후 포스기의 삐 소리와 함께 잔액 부족이라는 안내가 나온다.
급하게 휴대폰을 열어 잔액을 확인하고는 절망감에 빠진다.
돈을 빌릴 사람을 떠올려 보지만, 떠오르는 인맥은 없다.
엄마의 전화번호를 찾다가 문득 읽고 무시했던 안부 카톡이 떠올라 마음이 더 착잡해진다.
길바닥을 보며 터덜터덜 다시 방으로 향한다.
방에 들어와 냉장고를 열어보지만, 눈에 띄는 건 생수뿐이다.
생수통을 들고 급하게 물을 마시다 문득 '진짜 굶어 죽겠구나'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다시 침대에 누워 급히 구인 사이트를 열어본다.
당일 지급되는 일을 찾아보지만, 물류센터 외에는 갈 곳이 없다.
한 시간 동안 다리를 꼬고 누워 휴대폰을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마음을 다잡고 아웃소싱 업체에 출근 의사를 담은 문자를 남긴다.
오 분도 지나지 않아 오늘 출근하라는 안내 문자가 도착한다.
오후 네 시까지 사당역으로 집합하라는 내용이다.
점점 현실이 뼈저리게 다가온다.
일을 하려면 밥을 먹어야 하는데, 먹을 것이 없다.
냉장고로 가서 다시 생수통을 들어 목을 축인다.
침대에 다시 누워 물류센터 알바 후기를 찾아본다.
온통 힘들고 짜증 난다는 글들뿐이다.
부정적인 기운이 발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을 느낀다.
그렇게 뒹굴거리며 휴대폰을 보고 있다가, 밤에 잠을 못 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알람을 맞추고 억지로 잠을 청해 본다.
하지만 눈을 감아도 잠이 오지 않는다.
정말 큰일이다.
짜증을 내며 눈을 감고 있다가 떴을 때는 어느새 오후 세 시가 다 되어 있었다.
시간을 보고 급히 일어나 나갈 채비를 한다.
체크카드의 후불 교통 요금이 막히지 않은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급히 집을 나선다.
구글 지도를 따라 문자에 적힌 집합 장소에 도착했을 때, 이미 많은 사람들이 담배를 물고 한숨을 푹푹 쉬며 허공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다.
강제 금연 중인 나에게 담배 냄새가 코끝을 스치자 혈액이 찌릿찌릿 돌기 시작한다.
담배 한 개비만 달라고 하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치솟지만, 자존심이 그 충동을 억누른다.
늘어선 버스 옆에서 인솔자로 보이는 아저씨가 우렁찬 목소리로 모두 모이라고 외친다.
신분증을 준비하라는 말에 급히 주머니를 뒤진다.
다행히 신분증은 무사히 챙겼다.
어느새 인솔자 앞에 서서 이름, 계좌번호, 그리고 연락처를 알려준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마치 나를 무시하는 듯하다.
인원 등록이 끝난 후, 버스에 지정석이 있으니 맨 뒷자리와 앞자리는 앉지 말라는 경고를 받는다.
마치 외계인에게 납치당하는 듯한 공포감에 사로잡혀 천천히 버스에 몸을 옮긴다.
버스 내부를 둘러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빈자리에 가방을 둔 채 앉아 있다.
앉을 자리를 찾아 양옆을 살피며 걷지만, 마땅한 곳이 없다.
눈이 마주친 사람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가방을 치우며 한숨을 쉰다.
눈치를 살피며 최대한 접촉을 피하고자 바싹 몸을 당겨 앉는다.
이십 분이 지났지만 버스는 전혀 출발할 기미가 없다.
점점 새로운 곳으로 간다는 공포감은 잊히고, 언제 출발할지 모르는 짜증이 밀려온다.
어느새 버스는 만석이 되어, 인솔자가 가운데에 서서 인원을 파악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버스는 순서대로 출발한다.
버스가 교통체증을 뚫고 서울을 벗어나 옥천으로 향하는 고속도로에 접어들자, 현실감과 긴장감, 거부감이 뒤섞인 감정이 밀려온다.
이 낯선 공간에서 벗어나고 싶어 머리를 의자에 기대고 억지로 잠을 청해 본다.
경력자들로 보이는 사람들의 궁시렁거리는 소리와 함께, 얕은 수면 속으로 빠져들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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