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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질 후기

독백

by 같이알아보자 2024. 8. 3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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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흘째, 마치 콩알만 한 대변만이 나오는 나날을 보내며, 몸과 마음이 점점 더 지쳐갔다.

알바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저녁길, 배 속의 불편한 단단함이 나를 괴롭혔다.

평소처럼 걷던 퇴근길이 끝날 무렵, 시계는 이미 새벽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일하는 동안, 이전에는 느껴본 적 없는 엉덩이 사이의 이상한 감각이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어디선가 맥주가 변비에 좋다는 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마침 지나가던 편의점에 들러 테라 캔 하나를 집어 들었다.

서둘러 방으로 가려는 종종걸음 중, 꼬리뼈를 찌르는 듯한 고통이 갑자기 몰려왔다.

등골이 서늘해지고, 몸이 무겁게 가라앉는다.

눈은 퀭해지고 손발은 창백해지며, 이 고통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혼자 끙끙대며 누워있던 어느 순간, 고통이 조금 사그라들었다.

씻을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바닥에 던져둔 맥주 캔을 벌컥벌컥 마셨다.

맥주가 목으로 넘어가며, 고통이 조금씩 잦아들자 마음도 조금 편해졌다.

한 캔을 비우고, 휴대폰을 보며 눕자 금세 잠에 빠졌다.

눈을 뜬 시간은 오전 10시. 어젯밤의 고통이 오늘은 쾌변으로 이어질 거라는 희망에 생수 반 병을 들이켜고는 화장실로 직행했다.

변기에 앉아 평소처럼 담배를 피우며 휴대폰을 보다가, 복부에 힘을 주는 순간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엉덩이와 내장이 뒤틀리며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변비가 풀리는 것일 거야’라고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다시 힘을 주는 순간, 눈가에 눈물이 맺히며 조금 전의 고통보다 더 강력한 통증이 전신을 휘감았다.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와중에 엉덩이 사이에 무언가가 걸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변기 속에서는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휴지로 뒤처리를 해보니, 피가 묻어있었다.

순간적인 패닉이 몰려오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잠시 후, ‘큰일이 났다’는 불길한 예감에 핏물을 씻어내려 했지만, 그 과정조차 너무 아팠다.

심하게 아프다.

하지만 눈물을 참으며 그 고통을 견뎌냈다.

걸음마를 갓 시작한 아기처럼 힘겹게 침대로 직행해 엎드렸다.

하의를 내린 채로 한참을 엎드려 있는 동안, 머릿속에서는 ‘혹시 죽을 병에 걸린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맴돌았다.

즉시 휴대폰을 들어 네이버로 증상을 검색해봤다.

믿고 싶지 않았지만, ‘치질’이라는 단어가 계속해서 눈에 들어왔다.

구글 지도를 켜고 최대한 가까운 병원을 찾아봤다.

‘엉덩이 병원’이라는 검색어를 입력하니 항문외과가 나왔다.

가장 가까운 병원이 차로 30분 거리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절망했다.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제일 가까운 병원에 전화를 걸었고, 친절한 간호사가 전화를 받았다.

간호사의 아름다운 목소리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살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에 엉덩이에 뭐가 튀어나왔고 너무 아프다고 하소연했다.

간호사는 당황하지 않고 차분히 진료 예약을 잡아주었지만, 나는 말을 끊고 곧바로 가겠다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아픔에 수치심조차 잊은 채 최대한 엉덩이를 들고, 엉기적거리며 집 밖으로 나섰다.

마침 손님을 내리는 택시가 보였다.

급한 마음에 비명을 지르며 택시를 불러 세웠다. 택시가 앞에 서자, 낑낑거리며 문을 열고 엉덩이를 안 닿게 하려고 옆으로 누운 자세로 탔다.

그렇게, 비포장 자갈밭을 엉덩이로 달리는 듯한 고통 속에서 병원으로 향했다.

오늘따라 길은 막히지 않는데, 택시는 유난히 느리게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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