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빛을 가득 머금은 화려한 건물들이 마치 보석처럼 빛난다.
거대한 네임드 회사들의 로고는 하늘 높이 자리 잡고, 자신의 위용을 세상에 뽐내듯 당당히 서 있다.
그들이 점유한 공간은 마치 권력과 성공의 상징처럼 느껴진다.
어느 방향에서든 버스를 타고 다리를 건너 여의도에 들어서는 순간, 세상은 갑자기 조용하고 질서 있게 변한다.
밖에서는 거칠게 질주하던 버스조차도 이곳에 발을 디딘 순간,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속도를 줄인다.
시속 15~20km의 느린 걸음으로 변하며, 정류소에 멈출 때면 아주 천천히 탑승자들을 기다린다.
이곳에선 시간마저 유유히 흘러가는 듯하다.
보도를 따라 걸음을 옮기면, 길에는 쓰레기 한 조각도 찾아볼 수 없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정돈된 이 거리에서는 조차 숨을 고르며 조심스레 걸어야 할 것만 같다.
그러나 그 완벽함의 틈새로 좁은 골목길이 드러날 때마다, 숨죽인 노점상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고, 그 주변에는 문명의 잔해들이 조용히 쌓여 있다.
거리를 따라 걷다 보면, 스타벅스의 매장이 잊을 만하면 눈에 들어온다.
그 창가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한가로이 여유를 만끽하며 커피를 음미한다.
안쪽 테이블에는 정장을 입은 이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서류를 펼쳐놓고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들의 말은 들리지 않지만, 그들이 만들어내는 장면은 그 자체로 한 편의 드라마처럼 보인다.
금융거리는 마치 인물들의 캐릭터가 확연히 드러나는 무대 같다.
깔끔하게 차려입은 사람들은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으며, 항상 누군가와 중요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들의 발걸음 하나하나가 마치 목적지를 알고 있는 듯 단호하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는 순백의 국회의사당이 그 웅장한 자태로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 앞에는 현대적인 도시의 풍경이, 뒤로는 한강이 흐르고 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얼굴에 묘한 여유와 은근한 독기를 품고 있다.
무엇이 그들을 이렇게 만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들의 표정은 마치 내면의 긴장을 숨기고 있는 듯 보인다.
국회의사당에서 5~10분 정도 걸으면 커다란 공원이 나온다.
그곳에는 은퇴 후 연금으로 여유로운 삶을 즐기는 노인들이 모여 있다.
그들은 섭씨 30도의 태양 아래에서도 부와 명예를 상징하는 옷을 차려입고, 얼굴에는 일말의 감정도 드러내지 않는다.
길거리를 둘러보아도 담배를 피우는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이 비현실적인 풍경 속에서, 나는 문득 숨이 막혀온다.
이곳의 정돈된 질서와 무거운 여유 속에서, 나는 알 수 없는 질식감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