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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공단[2]

관찰

by 같이알아보자 2024. 8. 30.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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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 교대가 시작된 지 몇 달이 지났다.

같은 공장, 같은 기계, 같은 얼굴들. 하지만 익숙함보다는 점점 더 깊어지는 피로와 무기력함이 나를 덮쳐온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것 같았던 몸의 통증은 오히려 더 심해졌고, 머릿속을 지배하는 기계의 소음은 더 크고 날카로워졌다.

교대 시간에 맞춰 출근하면 늘 그렇듯이 몇 마디 없는 동료들과 인사를 나눈다.

얼굴은 하얗게 질려가고, 입술은 바짝 말라간다.

다들 힘겹게 인사를 건넨 후, 아무 말 없이 자기 자리로 향한다.

이번에도 나는 같은 기계 앞에 서 있다.

새로운 날이지만, 새로울 것은 아무것도 없다.

반장이 전달하는 업무 지시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저 기계의 소리와 함께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작업들이 이어질 뿐이다.

기계는 여전히 빠르게 돌아가고, 나는 또다시 손을 기계 안으로 집어넣어야 한다.

이번에도 역시 실수 없이 잘 해내야 한다. 하지만 오늘은 왠지 기계의 소리가 더 거칠고, 더 날카롭게 들린다.

집중하려고 애쓰지만, 고통스러운 관절과 발바닥의 뜨거움이 자꾸만 나를 방해한다.

잠시라도 실수하면 큰일이 나기 때문에, 나는 숨을 참으며 손을 조심스럽게 움직인다.

하지만 잠깐의 방심이었을까? 기계가 멈추고, 불량이 나왔다.

반장이 다가오며 눈을 부라린다.

나는 그저 고개를 숙인 채 사과할 뿐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기계와의 싸움은 더 치열해진다.

두 시간마다 주어지는 짧은 휴식 시간은 더 짧아진 것만 같고, 그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끝없는 작업이 시작된다.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리면, 어느새 아침이 다가오고 있다.

퇴근 시간이 되면 모두가 무거운 발걸음으로 공장을 나선다.

나도 그들처럼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집에 도착해도 몸은 쉴 수 없다.

기계의 소음이 여전히 계속해서 귓가에 맴돌고, 잠을 청하려 해도 쉽지 않다.

밤과 아침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이 생활 속에서, 나는 점점 지쳐가고 있다.

공장의 밤은 끝나지 않을 것처럼 느껴지고, 나는 그 속에서 점점 더 깊이 빠져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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