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가 끝없이 달리는 기분이 든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눈을 떠보니 한 시간 반이 훌쩍 지났다.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는 안도감에 눈꺼풀이 다시 무거워진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버스가 서서히 서행하며 이리저리 핸들을 돌리기 시작한다.
창밖으로는 화물차와 버스들이 소시지처럼 줄지어 서 있다.
그 옆으로는 커다란 회색 건물들이 부정적인 기운을 내뿜으며 어둠 속에 드리워져 있다.
어느새 천천히 달리던 버스는 가장 눈에 띄는 사업장으로 진입한다.
이곳에는 새빨간 버스들이 줄지어 서 있고, 많은 버스기사들이 밖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버스는 지정된 주차장에 멈춰 섰다.
버스 안의 사람들이 흐느적거리며 짐을 챙기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천천히 내릴 준비를 한다.
하나둘씩 죽을상을 한 사람들이 앞에서부터 차례로 내려간다.
많은 사람들이 주차장 옆 간이 흡연장으로 발길을 옮기지만, 나는 담배가 없어 함께하지 못한다.
잔고가 이천 원 남은 체크카드를 들고 자판기로 향한다.
제일 싼 캔커피를 누르니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음료가 나온다.
캔을 따며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가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쉰다.
그 광경을 바라보며 음료를 마시는데 공복에 당분이 들어가자 배가 더 고파온다.
스트레스가 급격히 몰려온다.
천천히 음료를 마신 후 입구로 보이는 길을 따라 들어간다.
안으로 들어서자 컨테이너로 만들어진 간이 사무실들이 빼곡히 붙어 있고, 그 안에는 지친 표정의 용역 업체 직원들이 앉아 있다.
문자를 다시 열어 배정받은 업체명을 확인하고 천천히 컨테이너 입구에 붙어 있는 명패를 확인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연락했던 업체의 사무실이 눈에 들어온다.
쭈뼛쭈뼛 얼어버린 채로 사무실에 들어가니, 앞에 앉아 있던 직원이 이름과 소속을 말해달란다.
이름과 소속을 대자 그는 컴퓨터로 바쁘게 무언가를 확인하더니 일용직 근로계약서를 건넨다.
아무 빈자리에 앉아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는데 빼곡히 적혀 있는 궁서체 같은 글자들이 무섭게 느껴진다.
재빠르게 정보 입력 칸에 개인정보와 계좌번호를 적는다.
다 작성한 계약서를 들고 직원에게 다시 가니, 그는 안전교육을 받았다는 확인서에 서명하라며 재촉한다.
휘갈겨진 종이에 서명을 하고 나니 직원은 근무 안내를 듣고 대기하라는 말을 남긴다.
삼십 분쯤 지나자 사무실 안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직원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따라오라고 한다.
직원의 뒤를 졸졸 따라 어디론가 이동하는데, 문을 열고 들어서자 요란한 소음이 가득한 공간이 펼쳐진다.
그곳에는 엄청난 굉음과 끝이 보이지 않는 레일이 건물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사방에서 비명 같은 고함 소리가 들려온다.
마치 지옥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든다. 직원은 능숙하게 계단을 타고 레일을 넘어 문을 열며 사람들을 이끈다.
그 뒤로는 질려버린 얼굴의 신입 일용직들이 따라간다.
앞사람을 놓치지 않으려 조마조마한 마음에 발걸음이 빨라진다.
길고 긴 레일과 계단을 넘은 끝에 도착한 곳에는 마른 체격의 사십 대 남자가 몸을 풀며 주변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 남자는 눈을 마주치는 듯하더니 하차해 봤냐고 대뜸 묻는다.
아주 빠르게 설명을 듣고 십여 분 동안 대기한다.
소음에 적응되면서 긴장이 조금씩 풀린다. 시계를 보니 오후 일곱 시가 조금 넘었다.
어디선가 삑삑 소리가 나더니, 어둠 속에서 엄청난 크기의 화물차가 천천히 후진하며 그 뒷모습을 드러낸다.
트럭이 멈추자 함께 있던 남자는 레일을 타고 반대편으로 넘어가 능숙하게 화물칸 문을 연다.
화물칸이 열리자 엄청난 먼지가 얼굴을 덮친다.
정신을 차려보니 눈앞에는 사람 키의 1.5배나 되는 높이까지 쌓인 잡다한 박스와 물건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다.
레일 건너편에서 남자가 아직 작업을 시작하지 말고 잘 보라며 시범을 보인다.
그는 빠른 동작으로 레일을 작동시키며 산처럼 쌓인 물건들을 올리기 시작한다.
오 분쯤 지나자 남자는 빨리 물건을 내리라며 재촉한다.
손을 뻗어 잡히는 대로 물건을 레일 위에 올린다.
작은 박스를 한 손으로 들어보려다 그 무게에 놀라 두 손으로 낑낑대며 올린다.
다양한 모양과 무게의 박스들이 너무 많아, 힘을 조절할 수가 없다.
어느 순간 온몸에 힘이 잔뜩 들어간다.
귀는 멍멍해지고 눈앞은 홀린 듯 기계적으로 사지를 움직이며 몸을 비튼다.
땀을 비 오듯 흘리며, 거친 숨을 내쉬면서도 물건들을 레일 위에 빼곡히 실어 나른다.
레일 위에 올릴 자리가 없어 물건을 들고 멍하니 서 있는 나를 보고, 건너편 남자는 짜증 섞인 소리로 뭐라 뭐라 하지만 들리지 않는다.
느낌상 한 시간쯤 지난 것 같다.
눈앞의 박스와 잡다한 물건들이 줄어든 것 같지만 그 뒤 어둠 속에서 또 다른 산이 보인다.
바닥에 있는 쌀 포대와 정체를 알 수 없는 쇳덩이를 들어보려 하지만 도저히 들 수 없다.
힘을 너무 주었는지 엉덩이에서 얼얼한 느낌이 난다.
이제는 정말 죽을 것 같다.
그 어느 순간보다도 엄마가 보고 싶다.